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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문화재단의 장학생 후기입니다.

 2019. 03. 19
두번째 뜻깊은 학산문화재단 장학생이 되어 기쁨니다. - 성공진행중인 야망있는 대학생


 

한규현 2019. 03. 13
안녕하세요 신한대학교 학산문화재단 장학생 한규현입니다.

 

녕하세요 신한대학교 기계자동차공학과 4학년 한규현 학생입니다.

 

  국내 1위 굴지의 Alloy wheel 전문기업인 Hands Corporation 에서 학산문화재단을 통해 장학생으로 선정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7살의 늦은 나이에 4학년으로 재학 중이라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인생에서 다양한 경험을 접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일본에서의 사업실패로 인한 가정 경제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친형이 대학교를 다니다가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연장을 통해 가정 경제에 학비부담을 덜게 되고, 그리고 둘째인 저는 자동차 부품 설계 및 해석을 공부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심도 있게 학업을 정진하고자 하는 미래의 자동차공학도입니다.

 

   Hands Corporation 건물에 들어서면서 검은 복도에 기하학적이고 멋들어지게 있는 Alloy wheel 들을 보면서 재작년 2017년 한 해 동안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실무경험을 접한 정비소가 생각이 났습니다.

 

정비 일을 경험할 때에는 중국인 친구가 때때로 알루미늄 휠 튜닝 작업을 하곤 했는데 요즘 중국에서 제조되는 알루미늄의 가격뿐만 아니라 질과 안전성 또한 개선되고 나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또한 알루미늄 자체 생산국인 중국의 입지가 커지는 것을 견제하고 나아가려면 남다른 기술력과 생산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체감적으로 직접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핸즈코퍼레이션의 휠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국토면적으로만 보면 작은 나라지만 기술의 선진화와 동향 및 미래의 경향성으로 따지면 우수한 인력과 기업이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반도체 시장과 전 세계의 자동차 산업과 제조업 시장이 어려운 상황인데, 전공 분야에 대한 공부를 계속 해나가고 공학도로써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정신과 인내를 가지고 나아가는 자세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장학금 수여식 당일 이사장님께서 Reading에 대한 습관과 이해하는 사고 및 자기계발에 대해 강조해 주셨는데 학문적 지식과 교양 그리고 국내외 산업의 통찰력을 겸비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저 또한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의 발전과 우수한 인재가 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다 할 것 입니다.

 

   대학시절 결코 쉽지 않은 생활형편에 이렇게 큰 도움의 손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해주신 교수님들과 선정해주신 장학재단 관계자 분들 그리고 이사장님께 더욱이 감사합니다. 

큰 사람이 되어서는 베푸는 건강한 사람이 되며 건강한 사회를 꿈꾸며 나아가겠습니다. 

 

 

 

정형진 2019. 03. 11
할 수 있다는 것

 

이가영 2019. 03. 11
학산문화재단의 도움으로 다시금 꿈꿀 수 있었던 기초 학문의 길

 

 

현민식 2019. 03. 11
“학산 재단이 뿌린 나눔의 씨앗, 그 씨앗에서 더 나은 사회를 싹 틔우겠습니다.”

학산 재단이 뿌린 나눔의 씨앗, 그 씨앗에서 더 나은 사회를 싹 틔우겠습니다.”

 

학산 재단의 장학금을 잊지 않고 나눔의 가치를 가슴속 더욱 깊이 새겨 사회적 가치를 증폭시키는 정책결정자가 되겠습니다.

 

 


 

 

 

 

[경제학 그리고 포용적 정책]

저는 사실 소위 말해 취업 잘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 경제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경제학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철없던 1학년 시절, 학과 행사에서 당시 경제학과 학과장님께서는 따뜻한 마음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경제학적 문제의 목적이고,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이 사회적으로도 최선을 낳는다는 것 정도로 경제학을 어설프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경제학의 목표는 개인 혹은 기업의 효용이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를 통해 사회적 후생을 증진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즉 모두가 잘살기 위해 개인의 이윤극대화’, ‘이기적 행동은 단지 수단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경제학에 점점 흥미를 느꼈고 경제학 공부를 바탕으로 정책결정자가 되어 사회적 후생을 증진시키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정책결정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울 때 쯤 1학년 때 학과장님께서 말씀하셨던 따뜻한 마음과 경제학에 대한 말씀이 떠올랐고, 그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포용적 정책결정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론적인 전공공부가 다가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계층, 다른 집단의 입장에서 고려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봉사와 나눔의 시작] 

대학입학 후 저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은 경제학 공부를 시작한 것과 헬스’,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한 것입니다저는 어린 시절부터 왜소한 체형으로 놀림 받아왔습니다. 운명적이게도 경제학과에는 다소 생소한 헬스동아리가 있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동아리에 가입했고, 선배들에게 운동을 배워 건강한 몸과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선배들의 사랑과 아무 조건 없이 받은 혜택을 후배들에게 운동을 알려줌으로써 다시 나누어주고 그 후배들이 다시 후배들에게 나누어 주고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갔습니다. 또한 나눔의 가치를 지역사회로 확장시켜 물류센터 알바를 통해 모은 성금으로 지역사회에 연탄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헬스동아리에서의 경험을 통해 나눔의 가치 확장을 통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따뜻한 경험과 나눔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2015년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송파구 노인 복지센터 봉사활동, 베트남 해외봉사 및 성북구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200여 시간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꾸준한 봉사활동으로 나눔을 가슴속 깊이 새겨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더욱 폭넓어졌습니다.

 

 

 

[나눔의 가치 위기]

그러나 군대에 입대하고, 사회에서 받는 혜택은 없고 사회는 나에게 의무만 부여하고 있다는 조금 삐딱한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군 전역 직전 아버지의 퇴직으로 가정형편이 안 좋아져 학비 부담이 가중되었습니다. 전역 이후에도 봉사활동을 이어나가고 싶었지만, 정신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부담이 가중되었습니다. 그래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포용적인 정책결정자의 길을 걷고 싶어 봉사활동과 아르바이트, 그리고 학업을 병행했습니다. 그렇게 전역 후 1년을 힘들지만 열심히 살았지만, 이제 4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해야 되는 시기가 왔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공부에 더 전념해야 해 봉사활동을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산장학재단이 다잡아준 나눔의 가치]

봉사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공부해 전념해야겠다고 결정할 시점에 때마침 학산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학비 부담을 덜게 되어 과외를 그만두고 계속해서 봉사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학산장학재단에서 수여받은 장학금은 봉사활동에 대한 기회비용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처음 헬스동아리에서 나눔의 가치를 가슴 속에 새겼을 때의 감정을 다시 일깨워주었습니다. 군입대후 불평등해보이는 사회의 의무부여와 나눔의 기회비용 증가로 흔들릴뻔 했지만, 나 또한 사회의 수혜를 받는 사회일원이라는 따스한 온정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헌신해야겠다는 의지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학산재단에서 받은 사랑은 나에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가라는 믿음과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칼 마르크스 또한 엥겔스의 후원으로 19세기 위대한 저서 자본론을 집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칼마르크스에게 믿고 아낌없이 지원해준 엥겔스가 없었다면,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엥겔스에게 받은 믿음과 지원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생각했던 마르크스처럼, 저 또한 학산재단이 저에게 준 믿음을 바탕으로, 나눔의 가치를 마음에 새긴 채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치열하게 고민할 것입니다. 또한 저 또한 학산에서 받은 사랑을 다음 세대로 증폭시키기 위해 꾸준히 나눔을 실천할 것입니다. 학산재단이 뿌린 나눔의 씨앗, 그 씨앗에서 더 나은 사회를 싹 틔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현민식 

김재권 2019. 03. 10
보내주신 위로와 용기가 로봇공학계의 퍼스트펭귄을 만들 것입니다.

시골소년, 로봇공학자 김재권을 꿈꾸다.

저는 논산군에서 태어나 성남시에서 자라고 있는 김재권입니다.

한옥 폐가를 옆에 두고 몇 마리의 닭과 함께 살던 시골생활을 뒤로 한 채 조금 갑작스레 이사 온 도시 성남은 같은 시간, 다른 공간을 직접 목도하게 한 순간이었습니다. 마법처럼 보이는 과학의 결과물에 압도되어 거리를 활보하고 지하철 환승만 여러 번 반복 했던 그 날, 로봇을 만드는 사람이 되자는 꿈을 꾸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결심은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이어져 가천대학교 기계공학과에서 공부하며 4학년인 지금 로봇공학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얻은 학산문화재단 51기 장학생의 훈장은 로봇공학자 김재권이 단순히 꿈이 아니라 가능한 목표라고 인정받고, 가능성을 지지받은 것 같아 감개무량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학산문화재단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시련을 통해 꿈은 단단해진다.

도시로 이사 온 이유는 당시 유일한 가장이셨던 아버지께서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아 더 이상 육체노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도시드림을 꿈꾸며 아버지는 성남의 어느 컴퓨터 앞에 앉으셨지만, 너무 많은 가족들의 무게를 짊어진 탓인지 대장암을 판정받으셨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완쾌하셨고 제가 겪은 시련은 저의 꿈을 단단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위기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하게 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잉여 인간으로 치환되지 않는 이상적인 삶을 희망합니다. 나이 듦과 육체의 한계 등의 이유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시킬 수 없다고 진심으로 믿기에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학산문화재단, 로봇공학계의 퍼스트펭귄을 만들다.

녹록치 않았던 가정형편은 대학 내내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 성적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학과 특성상 전액장학금이 없어 남은 학비를 아르바이트로 충당해야 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캠퍼스 로망은 요원해보였습니다. 그저 로봇공학자 김재권을 상상하며 친구들과 로봇 만드는 것을 즐거움 삼아 학교를 다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캠퍼스 로망과 저의 캠퍼스 라이프의 간극이 너무 컸을까요? 타인이 제 삶을 걱정하거나 때로는 지적하고, 심지어 스스로 괜찮은 걸까 자문한 날도 있었습니다.

나의 삶을 확신하는 것에 누군가의 확인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외로운 나날이었기에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학산문화재단 장학금은 제게 저의 삶과 목표가 퍽 좋다고. 그러니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도 된다는 확인이자 용기, 동력입니다. 이제 더 큰 힘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도전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고, 꾸준히 시도하며 전진하겠습니다. 학산문화재단에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위로와 용기가 헛되이 쓰이지 않았음을 확신시켜드리고 훗날 대한민국의 훌륭한 인재, 세계의 리더를 육성했음을 확인시켜드리겠습니다. 제게 주신 뜨거운 성원을 등에 업고 저 김재권, 로봇공학계의 퍼스트펭귄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채하름 2019. 03. 10
목표를 향한 인생의 여정에서 만난 응원

안녕하세요. 51기 학산문화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된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채하름입니다.

 

우선, 저를 학산문화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장학후기로 어떤 내용의 글을 써야할까 생각하다가 제 인생의 방향과 장학생으로 선정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장학금 수여식에서 제가 느낀 것에 대해 진솔하게 적어보려고 합니다.

 

 

# 인생의 목표

 

1. 제 인생의 직업적 목표는 중등학교 국어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또, 제 생각을 나타낼 수 있는 책을 만들거나 시를 쓰는 사람이 되는 것도 저의 꿈입니다.

 

2. 직업적인 목표와 더불어, 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인생의 목표를 정하게 된 과정

 

1. 고등학교 때, 지역아동센터에서 학습 멘토링 봉사활동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가정환경이 어려운 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진로상담과 학습 멘토링을 하면서 그 친구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그때의 기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벅차고 뿌듯한 감정과 함께 제 마음 속에 남아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가르치는 일에 큰 매력을 느꼈고,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는 학창시절을 지내오면서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왔고 그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고 느낀 것이 참 많습니다.

저는 선생님들의 긍정적인 모습은 닮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선생님들의 부정적인 모습은 스스로 경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저의 직업적 모델을 만들어왔습니다.

 

당시 저에게 인격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주신 선생님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제가 선생님들께 받았던 상담을 생각해보면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형식적인 절차로 상담을 진행했고, 선생님들의 사무적인 말투와 태도는 상담을 받는 저를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달랐습니다. 그 선생님께서는 우선 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고, 저를 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셨고, 제 일에 대한 모든 판단과 결정은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선생님께 신뢰받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꿈을 전적으로 응원해주고 지지해주신 선생님의 영향으로 저는 저의 꿈을 더욱 확고하게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선생님은 국어 과목을 담당하셨는데, 선생님의 영향으로 저는 국어에 더욱 흥미를 가지고 공부했고 중등학교 국어 선생님을 직업적 목표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2. 고등학교 1학년 때, 제 인생의 목표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책과 신문기사, 사회문제와 관련된 글들을 읽으면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차별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속해 있던 학교 현장에서도 차별이 많이 일어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소한 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는 차별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인식으로부터 저는 선생님이 되어서 차별이 없는 학교를 만들자는 목표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대한 글을 써서 책을 만들면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해 글을 써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를 정했습니다.

글을 쓰는 것으로 사회를 더 나아지게 한다는 것이 막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태도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저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후 대학에 입학하여 문학을 더 공부하고 시를 쓰는 연습을 하면서 ‘시’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된 이후에는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 장학금 신청 과정

 

저는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이것이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지내왔다거나, 사치를 부리며 살아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부모님께서 이혼하신 후로 아버지께서는 홀로 저와 누나를 키워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먹고 자는 데 불편함 없이 자라온 것을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로 등록금을 마련하는 일이 문제였습니다. 1, 2학년 때에는 성적관리를 어느 정도 해서 장학금을 받으면서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군대를 전역하고 4학년이 되면서 돈이 들어갈 곳이 많아졌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고 필요한 물건이나 책을 샀지만, 임용시험 준비를 위한 인터넷 강의료와 책값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교내 장학금을 받기 위해 요구되는 외국어 시험 점수도 기간이 만료되어 학과성적이 좋아도 장학금을 받지 못할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학과사무실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조교 선생님께서 제 상황을 아시고 학산문화재단에서 장학생을 선발하는데 지원해보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류를 준비했고, 놀랍게도 학산문화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등록금을 전액 면제받게 되었습니다.

 

 

# 장학금 수여식에서 느낀 것

 

장학금 수여식에서 이사장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1년을 내다보면 콩을 심고, 10년을 내다보면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면 교육을 한다.”

배움을 심는다는 이사장님의 말씀은 교직을 목표로 하는 저에게 더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이사장님께서는 장학생 한명 한명과 눈을 맞추시며 장학증서를 수여해 주셨는데, 장학생들의 배움과 꿈을 응원한다는 학산문화재단의 메시지가 더 진실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학금 수여식에서 사회에 공헌하는 학산문화재단의 진정성 있는 자세와 태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학증서를 받을 때 더 숙연해지고 진지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더불어 교육과 배움을 통해 세상이 더 긍정적으로 변화하길 바라는 학산문화재단의 큰 방향성은 제 인생의 목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저 역시도 학산문화재단으로부터 받은 배움을 타인에게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지금, 그리고 앞으로

 

저는 장학금을 받은 후 본격적인 임용시험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등록금을 면제받게 되면서 원래라면 아르바이트에 투자했어야 할 시간을 온전히 공부하는 데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부에 필요한 강의를 신청하고, 책도 구매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금전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았을 때의 진짜 문제는 지속적인 불안감과 무기력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산문화재단의 장학생으로 선정되면서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온전히 저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는 것처럼 사람에 대한 진심이 묻어나는 일이 있을까요.

저의 꿈을 응원한다는 학산문화재단의 메시지는 저에게 사람을 향한 ‘진심’이 무엇인지 실천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얻은 배움의 기회는 분명 제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학산문화재단이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는 저를 통해서, 또 학산이 심은 다른 배움의 씨앗들을 통해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력에는 학산이 심은 배움의 씨앗이 있다는 것을 세상은 알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감사합니다.

고영욱 2019. 03. 06
학산이라는 이름의 힘

[모든 게 불안하고 지치던 시간, 학산이라는 터닝 포인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 2019년도 1학기 학산문화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 된 가천대학교 법학과 14학번 고영욱입니다.

 

 2015년 겨울, 저는 대부분의 건강한 대한민국 남성들이 그렇듯 군입대를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저는 제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찰들을 할 수 있었으며 청소년기부터 간직해 온 경찰이라는 꿈, 특히 성범죄 전담 경찰이라는 미래를 위한 선명한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원대한 꿈과 계획을 가진 청년은 지난해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 자신의 꿈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복학한 첫 학기 교내 성적우수 장학금을 수여받았습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시험기간에는 하루 3시간만의 수면시간을 허락한 저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줄만한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학기였던 직전학기에 저는 전 이수과목 A+의 성적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전체 평점 4점대의 목표도 이뤘습니다. 하지만 지난학기 저의 석차는 100여 명 중 6등에 불과했습니다. 불과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결코 낮은 성적과 석차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6등이라고 하는 석차는 저에게 어떠한 중압감이 되어 다가왔습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누군가는 항상 나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 사실이 되어 현실이 된 듯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끝에는 결국 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라는 비관적인 의심이 저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불과 1년이라는 시간 만에 군복무 시절 그렸던, 자신 있던 미래의 밑그림은 점점 흐려지고 낮아진 자존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를 지치고 힘든 사람으로 정의내리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 학산문화재단 장학생 선정이라는 커다란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수년 간 대학생활 중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전액 장학생선발 소식은 스스로에게 채찍질만 하던 저에게 아주 달콤한 당근과 같았습니다. 그 당근은 채찍을 맞던 고영욱이 아닌, 항상 채찍질을 일삼던 고영욱에게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 줬습니다.

학산문화재단 장학생으로 선정된 저녁, 저는 끌어내렸던 자존감을 다시 올리고 앞으로 실망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때도, 상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오는 때도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속으로 다시 한 번 깨우치며 흐려진 미래의 밑그림을 처음보다도 더 또렷하고 선명하게 각인하였습니다.

 

 저에게 학산이라는 이름은 깊은 방황에 빠질 뻔했던 저에게 완벽한 터닝 포인트와 같은 힘이 되었습니다.

 

 

[바둑과 농구, 학산과 미래]

 

 초등학교 시절 저는 바둑을 뒀습니다. 어느 날 기원에서 있었던 중요한 대국에서 저는 수세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 순간 상대가 착수하던 중 실수로 바둑알 하나가 옆으로 옮겨졌고 저는 그 사실을 알고서도 이기고 싶은 마음이 앞서 이를 묵인하였습니다. 결국 저는 그 대국에서 이겼고 상대의 실수를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어린 저의 마음에 그 행운은 불편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계속해서 죄책감이 들 뿐 승리한 사실이 기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차라리 그날 대국에서 원래대로 패하였다면 훨씬 나았을 거라 생각하며 다시는 비겁한 성취를 꾀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중학생의 저는 5년째 농구를 하며 프로 농구선수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갓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180cm 가까이 되는 신장을 가지고 있었기에 코트에서 저는 누구보다도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지역 대회에서 MVP를 수상할 만큼 어느 정도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유투 성공률이 50%도 되지 않아 고민이었습니다. 3개월 간 훈련 후 혼자 남아 1시간 동안 혼자서 자유투 연습을 한 결과 20번의 자유투 중 19번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농구라는 스포츠는 저에게 노력의 진실성을 알려주었습니다.

 

 농구 선수를 희망하던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대회 도중 목 디스크 부상으로 그 꿈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미래를 위한 학업을 시작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저는 가천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성인이 된 저에게 학산은 꾀쓰지 않고 성실히 노력하면 진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증명과 같은 의미입니다. 마음과 몸으로 배운 신념에 힘을 실어준 셈입니다.

 

 

[성범죄 전담 수사관이라는 꿈]

 

 저의 꿈은 경찰입니다. 그 중에서도 성범죄 전담 수사관이 되는 것이 저의 오랜 희망입니다. 제가 사춘기를 겪던 때 당시 신문과 TV에서는 ㅇㅇ이 사건이라는 제목의 뉴스들이 연일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충격과 논란을 일으키는 그 사건에 대해 바라보던 어린 저는 어른들에게 화가 났습니다.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이다.’, ‘범인을 어떻게 잡겠다.’, ‘앞으로 이러한 범죄 예방을 위해 어떻게 하겠다.’ 등등 사춘기 소년이었던 제가 기대했던 말들은 그 기사들 속에서 찾기 힘들었습니다. 어른으로서의 책임이 없어보였습니다.

 

 보통 경찰을 꿈꾸는 제 또래들은 정의구현, 국가에의 공익 기여, 안정성 등을 그 꿈의 이유로 꼽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종의 책임감에 그 뜻이 있습니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보다 더 위험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그 중 제가 가장 주도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직업이 바로 경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경찰이 되어, 성범죄 전담 수사관이 되어, 조두순 사건의 그 끔찍한 기억과 같은 사건들을 예방할 수 있다면 제게 그보다 더 큰 내적 성취감은 없을 것입니다.

 

  학산문화재단이 저와 같은 학생들에게 장학 사업을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훌륭한 법인의 미래 우리사회를 위한 투자이자 지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미래에 대하여 희망적인 예상을 할 수 있는 근거는 학산문화재단과 같은 법인과 개인들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산의 마음은 저에게로 와 건강한 의지를 태우는 구체적인 힘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산이 제게 지원한 전액장학금은 성범죄 전담 수사관이라는 저의 미래를 위한 구체적 비용이 되었습니다. 경찰이 되기 위한 인터넷 강의 비용과 교재비는 150만원이 훌쩍 넘어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던 저에게는 너무나도 부담되고 높은 금액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산문화재단 덕분에 저는 원하던 강의를 신청할 수 있으며 지금도 꿈을 위해 그 강의를 보며 부단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산은 성범죄 전담 수사관이라는 저의 꿈을 응원해준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분들께]

 

 학산문화재단 관계인 분들 저에게 이런 소중한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만약 학산문화재단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불철주야 일하며 제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채 시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학산이 저에게 수여한 장학증서는 단순한 장학금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졌습니다. 외로이 노력하던 저를 다른 사람이 인정해준 듯 하여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학산의 가족 분들 항상 학생들을 위해 노력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글을 보고 계시는 학생여러분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부단히 노력하여 다시 한 번 학산문화재단의 장학생이 되기 위해 도전하겠습니다. 다음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대면할 수 있기를 희망하겠습니다.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안형민 2019. 03. 06
장학금 수여식 상세후기

장학금 수여식 상세후기 먼저 적도록 하겠습니다!

 

 

9시 30분까지 도착하라는 문자를받고 10분쯤에 도착했습니다.

대기실같은곳에서 대기하다가 20분쯤 행사장으로 입장시켜주더라구요

 

 

행사장은 요렇게 생겼답니다.

제자리를 찾다보니 이런!!! 학생들 자리중에서 맨앞자리더라구요..

인터뷰같은거 하면 어쩌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선물이 뜨악.. 화질이 안좋아서 설명드리자면

샴푸랑 트리트먼트랑 헤어세럼이네요

마침 제가 여행가는길이었는데 샴푸를 안챙겨온걸 어찌아시고..

기분좋게 기다리다 10시가 되었습니다!

 

먼저 이사장님께서 훈화말씀이 있으시네요.

제가 맘대로 올리는거다보니까 얼굴은 가렸습니다!




다음으로 총 75명의 학생한테 한명 한명 장학증서를 직접 나눠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좀 오래 걸리더라구요 대충 30분에서 40분정도 걸렸던거같아요!

이 시간을 위해서 문자에 슬리퍼나 츄리닝 금지라는 문구가 있는것같습니다.

저 단상위에 슬리퍼를 신고 올라간다면 좀 그렇겠죠??

 

 

이제 학교별로 사진을 찍습니다

총 7개 학교에서 받더라구요

 

마지막으로 75명의 학생이 전부나와서 이사장님과 단체 사진을 찰칵! 찍고 행사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학산문화재단 관계자분한테 핸드폰 사진좀 찍어달라고 부탁했어야했는데 생각이없었네요.. ㅜㅜ 여기만 사진이 없습니다

제가 맨 앞 정가운데였는데 아쉽네요..

 

우려하였던 개인 인터뷰 이런거는 없었구요

화장실이 되게 좋았던게 기억이남네요

시간은 총 1시간정도 걸렸습니다.

 

장학금 수여식을 하며 느낀 점은 이사장님 훈화말씀하실때 목소리가 안좋으시더라구요 건강에 문제가 계신건지 모르겠지만 걱정이 좀 됐습니다.

건물이 되게 좋아보여서 나중에 이런 곳에서 일하면 좋겠다.. 는 생각도 들었구요

장학금을 받은 만큼 학산문화재단 이름에 먹칠을 하지않고 장학생에 어울리도록 품행을 단정히 하여 학교에 다녀야겠다 생각을했습니다.

제 주변 친구들한테도 학산문화재단에 대해 널리 알려서 더 많은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을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장학금 수여식 상세후기 및 간략한 느낀 점 이었구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학금을 주신 학산문화재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혜진 2019. 03. 05
학산문화재단에 대한 감사와 다시 얻은 용기와 자신감.

 

저의 꿈은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는 법조인이 되는 것이고, 올바른 판단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해야 하지만, 저희 집 형편상 녹록치  않고, 현재 대학 등록금 조차 마련하기에 부담스러워하여 판사라는 꿈을 포기하고 다른 취업을 알아보아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학산문화재단에서 주신 장학금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학비 걱정 없이 제가 이루고 싶은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학산문화재단을 알게 되어, 도움을 받고 꿈에 한층 더 나아가게 됨으로써 매우 감사함을 느낍니다.

혼자서는 꿈을 이룰 수 없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얻어야함을 이번 기회에 절실히 느낌으로써, 이번에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제가 후에 꿈을 이뤄 사회에 나가서 기여를 할 수 있는 상황에 올 때, 이번 학산문화재단을 통해 받은 감사함을 떠올리며, 저 또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 후에도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여 성적장학금을 받겠다는 의지를 더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성적장학금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내가 어떻게 쟁쟁한 사람들 속에서 성적장학금을 받을 수 있겠어..’라고 낙담했다면, 이번에 성적장학금을 받음으로써, ‘나도 할 수 있네! 열심히 한 만큼 보상을 받으니 다음에도 잘 할 거 같다!’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장학생으로 선정되면서 저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주신 학산문화재단의 이사장님과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저의 모교인 고려대학교에도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학산문화재단의 이타적인 정신을 본받아, 저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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