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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필연] [오르막길]




안녕하세요. 저는 전북대 수학과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이번에 장학금을 처음으로 받게 되었는데 이 장학금은 일체유심조를 새긴 제 마음을 더욱 굳건히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공부를 좋아하거나 잘했던 적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항상 중위권을 유지하던 저는 대학교도 그저 저의 성적에 맞춰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학교 공부는 저에게는 더욱 큰 골칫거리로 느껴졌고, 성적은 점점 떨어져만 갔습니다. 물론 장학금은 꿈을 꿔보지도 못했습니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 친구들과 노는 것에만 열중하던 저는 한 단어로 인해서 삶이 달라졌습니다.
군대에 있었던 저는 심심할 때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 일체유심조 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공부는 못했지만 호기심이 많던 저는 단어를 찾아보게 되었고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에 먹기에 달렸다”라는 뜻을 품고 있는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주 들었던 말이었기 때문에 그저 좋은 말일 뿐 저에겐 그냥 그런 뜻의 단어라는 것 이상의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것의 마음에 먹기 달렸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라는 말은 듣기 싫고 거부감이 들었지만 일체유심조 라는 단어가 저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모든 것을 안 좋게 보았고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했지만 일체유심조를 새기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역 후 저는 매순간 일체유심조를 마음에 담았습니다. 공부를 할 때, 친구와 대화를 할 때, 운동을 할 때 등 모든 상황에서 일체유심조라는 마음은 저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1학년 때 2~3점대의 학점을 받았던 저는 2학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싫던 공부는 저에게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되었고, 일어나기 싫어 매일 이불 속에 숨었던 아침은 저에겐 상쾌하게 운동을 즐기는 아침이 되었습니다. 1학년 때의 생활을 후회했지만 그것 역시 일체유심조를 새기며 지금부터 열심히 하자라는 마음가짐으로 털어냈습니다. 그 이후 성적은 거짓말처럼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4.0 -> 4.42 -> 4.5 까지 성적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노력하면 된다는 마음을 새기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장학금을 탈 수 있다는 말에 기뻤고 제 자신이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마치 제가 이제까지 일체유심조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왔던 날들을 인정해주고 그 노력들을 보상받는 기분이라서 더욱 감사했습니다. 장학금을 받는 그 순간까지 저는 가슴 벅찼고, 저에겐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습니다.
주변에 정말 여러 좋은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말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정도로 가슴 깊이 박히는 말들이 많습니다. 제가 그 경험자입니다. 학산문화재단 이사장님의 말씀처럼 항상 사회가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그 말씀을 일체유심조와 함께 제 마음에 새기며 앞으로도 제 삶을 더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학산문화재단에 큰 은혜를 입은 한양대 에리카 기계공학과 김기도 학생입니다.
먼저 이글을 쓰기전에 저와 같이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하신 77명의 학생중 일부 글을 게시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 한두글만 보려고 했는데 첫글 둘째글 그리고 마지막글까지 전부 제가보기에 너무 멋진내용 그리고 한편으론 안타까운 내용들이 있어서
전부 다 볼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공대인 저와 다르게 글솜씨가 굉장히 수려하고
저도 그 학생들중 한명으로써 제 이야기를 전하고 동시에 학산문화재단에 감사를 표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한번의 실패, 그래서 더 단단한 의지]
저는 16학번이지만 26살입니다. 그도 그런것이 20살 제때 가야했을때 원하는곳을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저는 왜 공부해야하는지 몰랐고 놀고 방황하기 바빴습니다. 그러다가 전문대 1학년을 흐지부지 0.75(그때당시 조금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하지만 1도 되지 않았던..)의 가능한가 싶은 학점을 받았던거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1년을 허송세월을 보내며 돈과 시간을 날리고 집에 큰 상처를 준채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군대 생활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사람이 배웠을때 얼마나 멋진가 하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거기서 공부의 동기를 얻었고 제가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군대에서부터 재수를 준비하다가 전역하고 3일뒤 재수학원에 들어가기로 결심합니다. 없는 형편에 정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재수학원에 겨우 들어갔지만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실력이었기에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인터넷 강의를 들어서 독학 하기로 하였습니다. 어차피 재수학원 다닐 형편이 아니었기에 잘됬다는 생각으로 수준에 맞추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너무 힘들었고 아무 등불도 없는 어둠속에 있는것 같았습니다. 시작할때부터 SNS와 핸드폰을 모두 끊고 공부를 했기때문에 공감하며 의지할곳도 없었습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제 인생에 이것밖에 없고 이것뿐인것 처럼 했습니다. 거의 재수생활 말쯤 너무 힘든시기가 닥쳐왔습니다 저는 이과를 가고싶었기때문에 수학이 굉장히 중요한데 9월모의고사에 수학이 58점밖에 안나와서 거의 6등급정도 밖에 안나오는 것입니다. 항상 수학이 끌어올리기 어렵고 해도 안될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서 덜컥 너무 겁이났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처음 시작할때 등호를 넘기면 +가 -가 되는것도 가물가물 할 정도였으니 처음 베이스가 너무 없었으니 오르기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했지만 끝까지 저를 믿고 한 결과 수능때 92점을 받아서 만족할만한 성적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재수를 준비하면서 값진 교훈을 얻었습니다. 정말 내가 원하면 그리고 내가 할수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내가 목표한 바에 도달하거나 하다못해 수렴하게 된다는것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제 예전의 한심한 모습에서 탈피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탈바꿈한 정신과 마음가짐으로 한양대에 입학하여 제 입으로 직접 말하기는 그렇지만 매학기 우수한 성적으로 학기를 마치면서 전진하다가 결국 직전학기 4.5평점을 받게 되어 학산문화재단이랑 인연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안에서도 그리고 주변에서도 공대에서 그것도 기계공학과에서 4.5 만점을 받을 수 있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굉장히 자랑스러워 해도 된다면서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학산문화재단에 장학금 합격 통지를 받고 이번학기에 등록금 걱정하지 않고 또 학업에 몰두하면서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있고 배울 수있다는게 너무너무 행복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군대 가기전 단 한번도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던 적이 없었기때문에 이렇게나마 집에 큰 보탬이 된것에 대해서 너무 자랑스럽고 학산문화재단에 감사한마음이 큽니다. 학산문화재단의 기부역사와 이념은 저 뿐만 아니라 77명의 학생들 그리고 지금껏 장학금의 도움을 받은 학생들의 인생에 정말 큰 빛줄기로 자리 할것입니다. 그것이 장학금으로 인해 도움받아서 더 열심히 살게 되었다던지, 금전적인 지원으로 인해 등록금을 벌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아도 되게되어서 본인이 하고싶었던일,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면서 능력을 개발하는 일을 할 수 있게되던지 그리고 그로 인해 나중에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게 되었다던지...
[주변을 돌볼줄 아는 좋은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한양대학교에는 또래장학금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를 돕고 도움을 받는 제도 입니다. 학생들 개개인이 내는 돈은 어찌보면 적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또는 어떤 집단이 힘있는 규칙과 체계가 있게되는것은 결국 개인 하나하나가 있기때문이듯이 한사람이 내는돈은 미미 하지만 그러한 개인들이 한달에 1천원에서 3천원씩 모이다 보면 아주 큰돈이 되어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고 개인에게도 큰 피해가 없으면서도 그렇게 어려운 소수의 사람들에겐 정말 말못할 큰 도움을 줄수 있습니다. 이번에 학산문화재단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어 나눔이 주는 행복함과 따뜻함을 그리고 감사함을 배울 수있는 기회가 되어서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행복이 될수 있기를 바라며 또래 장학금을 신청했습니다. 생각만 했지만 실천을 못했고 나눔의 감사함과 따뜻함이라는 단어만 알았지 피부로는 느끼지 못했던 저에게 이러한 계기와 실천 동기를 느끼게 해준 학산문화재단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제 능력에 닿는 한 주변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수여식에 참가하였을때 이사장님께서 젊음의 가치에 대해서 말씀해주신바와 같이 열심히 앞으로 전진해 나가볼 생각입니다. 어려운일도 있고 이와 같이 행복한일도 놓여 있겠지만 항상 좋은분들이 옆에 있다는것을 생각하며 더 큰 어른이 될것입니다. 혹시나 다음방학이 될지도 모르고 아니면 더 후에가 될지도 모르지만 인연은 소중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서 더 좋은 인연으로 학산문화재단과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77명의 장학생 친구들과 기부 이래로 은혜입은 모든 학생들, 그리고 학산문화재단 관계자 여러분들 다들 앞으로 좋은일만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대생이라 글솜씨가 좋지 못해서 제 가슴속에 은혜를 다 표현하지 못한것 같아 너무 아쉬운 마음이지만 꼭 감사한 마음은 전하고 싶었습니다.
후기를 쓰는 지금도 장학증서 수여식 당일, 아침 일찍 길을 나섰을 때의 쌀쌀했던 날씨와 이사장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식장에 들어와 한껏 긴장한 채 자리에 앉아있던 제게 이사장님께서 전해주셨던 말씀.
"젊은 청춘들아, 앞에 펼쳐진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해라. 우리는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이런 청춘들을 응원하기 위해 장학사업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여식이 있었던 2월 26일은 크나큰 격려와 응원은 받은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여식이 끝나고 들뜬 마음으로 장학증서와 양손 가득 쥐어주신 선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런 격려와 응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선물과 장학증서를 손에 쥐고 집 앞에서 생각에 잠긴 제게, 갑자기 양손에 쥔 것들의 무게가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그리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적당히 노력해서 집 근처의 대학에 들어갔고, 가족과 적당히 상담해서 통계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제 의지보다는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제 모습을 의식하며, 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렇게 앞으로의 전망을, 집안의 여건을, 남들 눈을 생각하며 보냈던 1년의 학교 생활이 남겨줬던 것은 좋지 못한 성적과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변함 없으리라는 위기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공부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제 모습보다, 저 자신에게 가슴 펴고 떳떳할 수 있는 공부를 찾아봤습니다.
생각을 마치고 일어일문학과로 전과한 저는, 제 공부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자연스레 성적도 좋아졌습니다.
1학년 때 뒤에서 세는 것이 빠를 정도로 처참했던 성적은, 2017년 정반대가 되어 전북대학교 총장상과 학산문화재단 장학생으로 추천받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열정을, 제 마음가짐 하나로 미래를 바꾸어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지금 책상 앞에 장식해둔 장학증서 한 장의 무게가 무척 무겁게 느껴집니다.
저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다른 사람의 기대와 믿음을 받고 제가 이 자리에 서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해주었으며,
그리고 앞으로 제 발걸음이 다른 사람들의 보탬이 될 수 있는 곳을 향해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이 종이 한 장이 제 미래의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열흘 뒤,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갑니다.
낯선 땅, 낯선 문화 속에서 배움을 이어간다는 것은 물론 보람찬 일이겠지만 힘들 때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제 생각을 바꿔준 이 종이 한 장을 떠올리며 2018년 3월 12일에 결심한 이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기회를 베풀어주신 학산문화재단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